고무줄로 주둥이 꽁꽁…학대받던 그 진돗개, 동네 순찰대 된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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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반려견순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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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6-24 12:46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매헌시민의숲에서 만난 진돗개 '황제(5살 추정)'는 금세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반려견 순찰대'라고 적힌 형광 조끼를 입고 있어서다. 지난달 황제는 서울시 자치경찰 위원회(자경위)가 선발하는 '서울 반려견 순찰대' 신규 대원으로 뽑혔다. 반려견 순찰대는 보호자와 반려견이 한 팀으로 순찰 활동을 하면서 사람의 눈에서 보지 못하는 범죄 및 생활위험 요소를 발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날 순찰은 황제 보호자 권유림씨가 휴대폰 앱을 통해 '활동 시작' 버튼을 누르며 시작됐다. 순찰대는 주 2회 이상 순찰을 하여야 하는데, 자경위에서 사용하고 있는 앱으로 그날 동선이 기록되고 위험 요소 목격 시 112나 120으로 신고할 수 있다. 호기심 많은 황제는 40분간 공원을 돌면서 하수구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풀밭 등을 여기저기 살피며 냄새를 맡았다. 주위에서 자전거가 지나가자 순식간에 뒤를 돌아보는 등 반응속도도 빨랐다.
황제는 반려견 순찰대 재수견이다. 지난해 현장 심사에서 아쉽게 탈락한 이후 권씨는 황제가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모임 참여를 늘렸고, 보호자 옆을 따라 걷도록 하는 리드 워킹을 집에서도 연습했다. 그 결과 △대기 중 반응(대견/대인 반응) △외부 자극 △명령어 이행 △리드 워킹 등 심사에서 만점(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고 합격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반려견 순찰대 규모는 2022년 64팀으로 시작해 지난해 1704팀으로 약 27배 커졌다. 현재는 1449팀이 서울 곳곳에서 활동 중이다. 반려견 순찰대가 늘어나면서 신고 건수도 자연스레 증가했다. 112 신고 건수는 2022년(206건)에 비해 지난해 131%가량 증가했고, 지난해 120(다산콜센터) 신고 건수는 2년 전 대비 약 3배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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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려견 순찰대 연도별 현황 및 실적. /시각물=이지혜 디자인 기자. |
순찰대로 뛰는 황제가 시민들의 시선을 끄는 이유는 또 있다. 얼굴에 다이아몬드 형태의 상처가 있어서다. 한 살도 채 안 됐던 2021년 9월 황제는 전북 진안의 한 도로에서 공업용 고무줄로 주둥이가 꽁꽁 묶인 채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발견됐다.
열흘 정도 주둥이가 막힌 채 하염없이 걸어온 것으로 추정됐다. 고무줄을 풀자 아랫입술은 더 이상 쓸 수 없을 만큼 망가졌고 주변 피부는 괴사하고 턱뼈가 드러난 상태였다. 물을 마시면 금방 핏물로 변했다고 한다. 황제는 주변 피부 조직을 끌어 상처를 덮는 수술을 받은 끝에 건강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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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2021년 구조 당시 황제의 모습, 오른쪽은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매헌시민의숲에서 만난 현재 황제의 모습. 현재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상처만 남은 상태지만 최초 구조 당시엔 턱뼈가 드러나고 주변 피부가 괴사한 상태에서 발견됐다./사진=민수정 기자, 권유림씨 제공. |
학대받고 고생했던 삶에서 벗어나 '황제처럼' 살라는 의미에서 황제라는 이름도 갖게 됐다. 동물권을 위해 활동하는 변호사인 권씨는 미국 입양을 앞뒀던 황제를 임시 보호하다 2022년 10월 가족으로 품기로 결심했다. 황제를 학대한 범인은 현재까지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권씨는 "범인을 못 잡아 아쉽긴 하지만 지금은 황제가 잘살고 있고 그런 과거가 없었다면 저와 인연이 닿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씨는 순찰 활동을 통해서 대형견이 도심에서 사는 것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음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그는 "황제는 얼굴에 상처도 있고 큰 개여서 사람들이 무서워할 때가 있는데, 반려견 순찰대 조끼를 입고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시민들 인식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순찰대 활동을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순찰 복을 입고 활동하는 모습을 예쁘게 봐주시고 거부감 없이 바라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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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매헌시민의숲에서 만난 황제와 보호자 권유림 변호사. /사진=민수정 기자. |